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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칼럼-고명자(시인, 문화사랑 백년어 상주작가)

  • 2019-08-23 11:04:03
  • 문화관광과
  • 조회수 : 187

서구칼럼-고명자(시인, 문화사랑 백년어 상주작가)

서구칼럼-고명자(시인, 문화사랑 백년어 상주작가)
서구칼럼-고명자(시인, 문화사랑 백년어 상주작가)
서구칼럼



너그러움의 근원들



고 명 자
시인·문화사랑 백년어 상주작가

 

아미동은 부산 근대화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비석마을이라는 지명의 유래라든지 천마산 꼭대기까지 집을 짓고 살아야했던 한국 근대사가 고스란히 남아 유적지가 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산복도로를 향해 걸어서 올라간다. 비탈길에 잠시 멈춰 허리를 펴고 숨을 고르는 순간 길갓집 미닫이가 힘겹게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알루미늄문의 반쯤 내려온 커튼 안쪽으로 부엌과 작은 쪽마루가 보이고 문지방너머 안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낯선 사람의 목격이 불편하겠다 싶었지만 집과 함께 늙어가고 계신 것 같은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뒷짐을 지고 서 계신다.
 
아미마을의 길갓집들은 담장이 생략되어 있다. 문을 나서면 바로 길이고 마당이고 정원이며 정류소다. 새시 문 하나로 집 안과 밖의 세계를 구분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 벅차게 한다. 어떤 비밀이나 사소함도 금방 드러날 것 같은 허술한 구조는 오히려 이웃에게 나를 맡기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다. 밥 냄새, 보리차 끊는 냄새,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옆집, 뒷집에서 시시때때 건너오는 소리가 일상의 안부를 알리는 인사말이 되기도 한다.
 
길가나 다름없는 문 앞에는 평상과 간이의자가 있고 크고 작은 화분에서 꽃들이 만발하여 풍경을 더해준다. 더러는 상추, 고추 등의 푸성귀도 탐스럽게 자라 솜씨 좋은 주인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늦은 저녁이면 하루 일을 무사히 마친 사람들이 평상에 나와 앉아 정담을 나눌 것이다. 수박이나 찐 감자, 옥수수 양푼을 앞에 두고 고단한 이바구를 밤 깊도록 풀어내리라 상상해본다. 그러다 또 어느 집 창문이 열리고 "시끄럽다, 잠 좀 자자." 하고 냅다 소리도 지를 것이다.
 
삶의 바탕을 이루는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은 이렇듯 아기자기한 사람살이, 눈뜨면 마주치는 이웃들과의 관계, 소통에 있다고 본다. 이집 저집으로 건너다니는 웃음들, 상처, 슬픔, 걱정거리들로 맺어진 사람들은 그 속에서 연민과 사랑, 인정과 희망을 자연스럽게 키워낸다. 화분에서 가지, 고추를 키워내듯 계절 꽃이 만발한 풍경을 낯선 이에게 선물하듯 따뜻한 마음은 감춰지지 않아 타인을 행복하게 한다.
 
이러한 풋풋함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시간의 무한정성을 되짚어보면 너그러움의 근원 같은 것이 여기에 있다. 6.25전쟁 전후로 피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북새통이었을 때 아미동은 산꼭대기까지 삶의 터전으로 내주어야했다. 싸움과 욕설과 우격다짐으로 겨우 거처를 얻은 사람들이지만 그러하기에 또한 양보하고 받아들이고 나누는 지혜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산복도로에 서서 보면 아미동 골짝골짝 구석구석의 낮고 작은 집들은 험난했던 시대를 기록해놓은 역사책 같다. 어느 집 창문을 기웃거려도 지나간 시간의 진한함이 흘러나올 것 같다.

서구청 홈페이지 내 게시된 자료는 공공누리 출처표시 후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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