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서구청 문화관광 스킵네비게이션

서구역사
서구역사
선사시대

선사시대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시대를 역사(歷史)시대라 하고, 그 이전의 시대를 선사(先史)시대라고 한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선사시대의 역사는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그 시대상을 복원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서구가 속해 있는 부산 지역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와 관련한 유적으로 좌동·중동·청사포 등 해운대 지역의 유적과 금정구 노포동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서구 지역은 아직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사람이 거주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해운대의 사례를 비추어보면 서구가 해안가를 끼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언덕이나 바닷가에 모여 살면서 사냥·채집·고기잡이 등으로 생활을 영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신석기문화는 약 8,000~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때부터 사람들이 부산 지역에 본격적으로 정착해 살기 시작하였다.

부산에서는 바다와 낙동강에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貝塚]가 많이 발견되었다. 영도구의 조도·동삼동·영선동과 사하구의 다대동, 강서구의 가덕도 등에 조개무지가 분포되어 있다. 서구의 경우 암남동 조개무지가 확인되었으며, 이를 통해 서구에서도 신석기시대의 문화가 존재하였음이 밝혀졌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식량자원이 풍부한 바닷가나 강가에 땅을 파고 만든 움집에서 무리지어 살았으며, 고기 잡이나 식량 채집으로 생활을 영위하였다. 작살과 낚시 바늘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기도 하였으며, 굴이나 조개 등을 채집해 먹었다. 이와 함께 조, 피, 기장, 수수 등의 밭작물을 재배하는 원시농경생활도 하였다.

암남동 조개무지는 송도해수욕장에서 남서쪽으로 2㎞정도 떨어진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부산지원 안에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그 흔적을 알 수 없다. 암남동 조개무지는 일제강점기 때 발굴 조사되었다. 이곳에서 나왔던 일부 유물을 일본인 기요노[淸野謙次]가 소장하였다가 지금은 일본의 덴리[天理]대학에 보관하고 있고, 우메하라[梅原末治] 고고자료에 그 토기의 탁본과 실측도가 남아 있다.

암남동 조개무지의 유물은 토기편 10여 편, 간돌도끼[磨製石斧] 2점, 조개팔지[貝輪] 1점과 ‘우메하라 고고자료’의 토기편 6점, 맷돌로 생각되는 석기편 1점, 뼈송곳[骨製尖頭器] 1점이 현존한다. 출토된 토기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말기의 대표적인 동삼동 조개무지와 금곡동 율리 조개무지와 같은 성격이다. 암남동 조개무지는 기후가 온난하고 농사를 짓지 않고도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곡식, 고기잡이를 이용한 식량 채집에 유리한 조건으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서구 지역은 영도의 동삼동 조개무지와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해 있었기에 같은 신석기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고 판단되며,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있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시대 말기에 대륙의 초원지대에서 발생한 북방의 청동기문화가 만주와 몽고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게 되는데, 청동기를 처음 사용한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12세기 무렵이다. 청동기시대는 이후 기원전 4세기 무렵까지 계속되다가 철기시대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 청동기문화는 만주의 송화강과 요하유역으로부터 한반도에 걸쳐서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부산의 경우 신석기시대에 비해 청동기시대 유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신석기시대에 이어 청동기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부산 지역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부산의 청동기인들은 북구 금곡동, 사하구 다대동과 같은 낙동강 유역과 감천동·괴정동·두구동·노포동·반여동·장전동·사직동 등과 같이 좁은 하천 유역에서 살면서 농경과 어로 활동을 병행하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을 하였다.

서구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대신동 유적이 있다. 암남동 조개무지가 바닷가에 위치한 반면, 대신동 유적은 구릉지대에 위치하여 농사를 짓고 살기에 비교적 유리한 곳이었다. 이는 부산의 청동기 유적이 하천 주변이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하고 있는 양상과 같다.

1934년 부산시 서구 대신동 77번지(현재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3가 1번지(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 일대의 과수원에서 돌널무덤[石棺墓]이 발견되면서 서구의 청동기문화가 알려졌다. 대신동 유적에서는 이단병식(二段柄式)의 간돌칼(현재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민무늬토기 조각[片] 등도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강가의 충적지 및 구릉 지역을 중심으로 군집 상태로 발견되며,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돌널무덤은 거주 집단의 주거지역 인근에 조성되므로 청동기문화를 가진 집단이 이 주위에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신동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 청동기인들이 광범위하게 거주한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도시화로 인하여 유구의 형태나 당시 출토 상황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

서구청 홈페이지 내 게시된 자료는 공공누리 출처표시 후 저작물 변경없이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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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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