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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신4동(주민센터소개)
안녕하십니까?
서대신4동 주민센터 홈페이지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여 생활복지와 지역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주민센터』는 단순한 행정업무 처리장소만이 아닌 여가선용과 교양, 문화 생활 등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자치활동을 운영하여 지역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저희 서대신4동 공무원들은 주민자치실현과 지역공동체 형성을 바탕으로 주민센터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유관기관과의 연계프로그램을 지속 개발해 나가는 등 항상 주민들과 함께 하는 정겹고 유익한 지역공동체의 자치센터가 되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이용과 참여 있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서 대 신 4 동 장
연혁
1947. 서대신동3가로 개칭
1951. 동제개편으로 서대신3동
1970년 7월 1일 서대신3동에서 서대신4동으로 분동
1978년 2월 5일 사상구 학장동(구덕령) 일부 편입
유래 및 특성
구덕산에서 시약산을 지나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줄기의 기슭에 자리하여 닥나무가 많아 닥밭골로 불리워졌습니다.
대신동이란 마을 이름이 처음 생긴 것은 1914년으로 추정되며, 보수천의 호안공사 이후 일본인이 대거 밀려와서 생긴 새로운 시가지를 한새벌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새벌의 「한」은 큰길을 한길이라 하듯이 큰대(大) 또는 태(太), 새는 새로운이라는 뜻의 신(新), 벌은 넓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동(洞)이므로, 대신동은 한새벌의 한자식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 주거지가 되기 이전까지는 부민포에 속하기도 하고, 대치리의 일부에 속하기도 하던 곳이 대신리라는 새로운 지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서대신동은 1926년 서대신정과 동대신정으로 구분되었고, 광복이후 1947년 일제식 명칭만 바꾸어 서대신동1,2,3가로 부르게 되었다가, 1959년 동명개정때 서대신1,2,3동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1970년 서대신3동을 3,4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발전계기는 1928년 공설운동장 시설입니다. 이후 1957년10월18일 공설운동장에서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가 열렸으며, 전시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하기도 하였으며, 동 개편과 분동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부산진구, 사상구, 사하구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덕산·엄광산이 둘러쌓인 자연친화적, 개발 잠재력이 풍부하고 역동적인곳으로 구덕운동장등 체육시설과 각급학교가 밀집된 교육·문화지역입니다.
기본현황
면적 | 3.12㎢ | 세대수 | 2,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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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구 | 3,453 | 여자인구 | 3,700 |
공무원수 | 12 | 통반 | 11통 50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