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칼럼-나의 귀향, 예술주택 홍안의상상
- 2025-12-24 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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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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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칼럼-나의 귀향, 예술주택 홍안의상상
서구칼럼-나의 귀향, 예술주택 홍안의상상
안 희 정
예술주택 `홍안의상상 대표
귀향은 나에게 오래된 시간의 문을 다시 여는 일이다. 부산 서구 남부민동, 내가 자라난 집의 나무 계단과 바다가 보이는 창문, 골목을 스치는 바람의 냄새가 내 작업의 원동력이었다. 타지에서 공부하며 작업을 이어오며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내 작업의 질문들은 자꾸 고향의 풍경들을 불러왔다. 나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다.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 10여 년이 넘게 있었고 부산으로 돌아와서는 직장 생활과 결혼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더해졌다. 그리고는 25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억의 자리로 돌아가 안정된 나의 스토리로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옛것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에 예술로 숨을 불어넣어 옛것이 살아 있는 마을에 새로운 예술을 가져와 직접 실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다시 고향집으로 데려왔다. 영화음악 프로듀서와 영화제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문화기획과 글 쓰는 작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내 어린 시절 집을 약간 고쳐 예술주택 `홍안의상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여기서 나는 집을 작은 전시관이자 작업실, 동네 사랑방으로의 역할로 쓸 수 있게 하고 있다. 새롭게 벽에 그림을 걸고, 테이블을 펼쳐 워크숍을 연다. 특히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에 두었다. 구술로 삶의 장면을 듣고 기록하고, 손그림과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기억을 다시 조립한다. 동네에서 함께 생활하며 예술로 지역을 아카이빙하고 싶다. 일을 해 보니 가장 좋은 점은 관계가 결과가 된다는 사실이다. 작품의 완성은 전시의 구조가 아니라,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과 서로 건네는 말속에 있다. 예술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날마다의 안부와 작은 손짓을 모아 변화의 감각을 일으키는 과정임을 새삼 배운다. 이 집은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모으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를 모으는 곳이 되었고, 나는 그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편집자이자 동행자가 되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돌아온 집의 의미를 조금 더 넓히는 것이다. 외부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레지던시를 운영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골목 축제나 작은 아트 페어도 하며 주민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확장하고 싶다. 지역사를 아카이빙하며 작품과 전시로 엮고, 동네 자체가 살아있는 갤러리가 되도록 꿈꾼다. 예술교육과 치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 귀향은 나에게 집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를 함께 건너는 용기를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 홍안의상상은 그 길 위에서 오늘도 조용히 자라고 싶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왜 예술을 하는지 다시 배운다. 그리고 내일도 이 집의 문을 열어, 새로운 이야기를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