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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칼럼-이재웅(영상작가)

  • 2026-05-27 11:45:35
  • 문화관광과
  • 조회수 : 247

서구칼럼-이재웅(영상작가)

서구칼럼-이재웅(영상작가)
서구칼럼-이재웅(영상작가)
서구칼럼-서구에 살어리랏다


이재웅
(영상작가, 문화TV 아츠미디어 운영)


언제 처음 서구로 이사 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사 온 첫날, 바로 옆집 친구와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던 기억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골목길 가로등 아래에서 숨이 차도록 웃고 떠들던 그 밤은, 어쩌면 내가 서구라는 동네와 처음 친구가 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월은 참 빠르게 흘렀다. 그 친구는 오래전 서구를 떠났고, 예비군을 지나 민방위가 될 때까지 어느샌가 하나둘 동네 친구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문득 돌아보니, 오랜 시간을 이 동네에 남아 있는 사람은 왠지 이제 나뿐인 것만 같았다.
 
어릴 적 우리들의 세상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 당시 집 바로 옆에 있던 대동중고등학교의 운동장은 동네 아이들에게 가장 거대한 놀이터였고, 꽃마을 저수지와 대신공원은 끝없는 모험의 공간이었다. 당시 국민학교 시절, 소풍 장소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연달아 대신공원으로 정해졌을 때는 어린 마음에 어찌나 실망을 했었는지,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 같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단 5분, 10분만 걸어도 숲 냄새와 물소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서구가 가진 가장 큰 축복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 매력 때문에 결국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한 것을 아닐까?!
 
어린 시절 친구들과 꽃마을 저수지에서 잡았던 황소개구리와 산골짜기 계곡에서 손을 담그며 잡던 가재의 기억은 이제 내 아들과의 추억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물론 지금은 황소개구리가 없지만….) 내가 뛰놀던 그 장소를 아이와 함께 다시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이곳 서구에 살고, 서구에 살았던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축복처럼 느껴진다. 이제 겨울이면 대신공원과 꽃마을 저수지에는 쇠오리와 원앙이 찾아오고, 여름이면 물총새가 물가를 스쳐 지나간다. 운이 좋은 날이면 대신공원 인근 숲길에서 반딧불이의 작은 빛도 만날 수 있다. 도시 속에 살면서도 계절의 숨결과 자연의 시간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서구만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아닐까?!
 
한때는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었고, 오래된 골목과 익숙한 풍경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구는 단순히 오래 머문 동네가 아니라, 내 삶의 기억과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추억 위에 아이의 추억까지 함께 포개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구는 더 이상 머물러 있는 장소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삶을 품어주는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 동네를 걷는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같은 길 위에 겹쳐지는 풍경 속에서, 아마도 오래도록 이곳에 살아가게 될 것임을 조용히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서구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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