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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람 - 장정구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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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람  - 장정구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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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계 챔피언 만든 건 고향 아미동"


장 정 구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한국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 장정구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58)이 `짱구쉼터를 통해 40여 년 만에 고향 아미동으로 돌아왔다.
그는 1983년 불과 20살의 나이에 주먹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뒤 5년8개월간 무려 15차례에 걸쳐 기라성 같은 도전자들을 모두 물리치며 타이틀을 지켰다. 15차 방어전 성공은 한국 복싱사상 처음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세계 최정상까지 올랐던 그는 WBC 선정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 프로복싱기자협회 선정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 에 한국선수 최초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주먹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를 만났다.


40년 만에 찾은 아미동
나를 기억해 준 따뜻함에 울컥

日 원정 15차 방어 가장 기억남아
복싱 외길 인생, 후회는 없어



-짱구쉼터가 생겼다. 마음에 드시는지?
 
마음에 들다 뿐이겠나? 고향 떠난 지 어언 40여 년인데 나를 영원히 기억해주는 공간이 생긴 게 아닌가. 정말 감사하다. 준공식 날 축사를 하려고 마이크를 잡았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히면서 눈물이 나려고 해서 혼났다. 현역시절 시합에서 이길 때도 그랬지만, 지지 않으려고 무지막지하게 고생을 했더니 나에게 보상이 오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아이들을 데려와 보여주려 한다.
 

-장 전 챔피언에게 아미동은 어떤 곳인가?
 
단언컨대, 아미동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세계 챔피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릴 때 아미동 오르막길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저절로 체력이 길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동네 출신으로서 남한테 지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아미동2가 233번지 18통 3반, 지금 제 둘째누님이 살고 계시지만 어릴 때 `별나게 살았던 나를 품어준 이웃들과 아미동은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 복싱계의 전설로 불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88년 일본 오하시 히데유키 선수와 치렀던 마지막 15차 방어전이다. 당시 복싱계도 한-일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분위기였다. 오하시 선수는 11차 방어전에서 맞붙어 이기기는 했지만, 일본에서 150년 만에 나올만한 천재복서라고 대서특필했던 선수였다. 게다가 제 첫 해외 원정경기였는데 안방에서만 이긴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 나오게 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몰아쳐서 7번 다운시켰고, 8회에 TKO승을 거뒀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복싱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이다. 복싱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지금도 `장정구권투클럽을 운영하고 있고,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갈 것이다. 복싱 외길 인생에 결코 후회는 없다.
돌이켜보니 (재물 등이)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저도 나름 고생을 할만큼 했고, 세계 챔피언이라는 더없는 영광의 자리에도 올랐고, 이후에 실패와 좌절도 경험하며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제가 좋아하는 글귀에 `천인소지(千人所指) 무병이사(無病而死)가 있는데,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 하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는 뜻이다. 남한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끝으로 고향분들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란다.

 
사진은 짱구마당 포토존 앞에서 선 장정구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서구청 홈페이지 내 게시된 자료는 공공누리 출처표시 후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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