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 정궁(正宮)인 경복궁(景福宮)의 동쪽에 자리한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을 함께 그렸다하여 동궐도(東闕圖)라고 한다. 이 병풍은 16冊의 화첩(畵帖)으로 세로로 다섯 번 접은 화책(畵冊) 형태 (6.5cm×45.5cm)인 것을 대작(大作)의 16폭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전체크기 584㎝×275㎝)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동궐도 표지(表紙)에 인자(人字)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천ㆍ지ㆍ인(天ㆍ地ㆍ人)의 삼본(三本)인 것으로 추정된다.
비단바탕에 먹과 채색을 사용하였고, 주위의 산을 배경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의 수많은 전각(殿閣)ㆍ재당(齋堂)ㆍ누정(樓亭)ㆍ랑방(廊房)ㆍ당청(堂廳)ㆍ궁장(宮墻) 등의 건축물과 연못ㆍ괴석 등의 조원(造園) 그리고 각종 시설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평행사선구도(平行斜線構圖)와 부감법(俯瞰法)을 결합하여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회화사적인 면에서도 매우 우수하고 중요하지만 조선시대 궁궐의 배치와 짜임새, 아름다움, 웅장함과 건축과 조경의 양태, 기타 시설물의 설치상태 등을 총체적이고 포괄적으로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작가는 미상(未詳)이나 어명(御名)에 따라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들에 의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궁궐주위의 산과 언덕들은 남종화풍 (南宗畵風)의 준법으로 그려졌으나 건물의 표현과 원근처리 등에는 서양화법의 영향도 엿보인다.
제작연대(製作年代)는 궁궐건물의 소실이나, 재건연대 등으로 보아 조선 후기 순조(純祖)때인 1826년에서 1831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 그림은 궁궐의 양식과 궁중미술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 회화적인 측면보다, 사료적(史料的)인 측면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일제시대에 창경원(昌慶苑)이라는 놀이터로 변모ㆍ훼손되었던 조선후기 궁궐의 원래 모습을 복원(復原)하는 고증자료(考證資料)로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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