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는 경상남도청, 한국전쟁기에는 임시수도정부청사, 휴전협정 후에는 경상남도청, 경상남도청 이전 후에는 부산지방법원 및 부산지방검찰청 본관 등으로 사용된 우리나라 근대사의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건물이다.
일제는 부산이 유일한 항만의 관문일 뿐 아니라 교통의 중심지이며, 산업ㆍ교육ㆍ문화 등의 시설이 발달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경상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왔다. 당시 경남도청은 부산부 부민정 2정목(지금의 서구 부민동2가)에 있었던 자혜병원의 신축 건물에서 임시로 사무를 보면서 병원 주변 대지 8,736평을 경남도청 부지로 선정하고 1923년 착공하여 1925년 4월 25일부터 경상남도청의 업무를 시작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 8월 18일 정부가 부산으로 이전한 후 9월 28일 서울수복으로 10월 27일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1차 임시수도 시절에 본 건물의 본관은 정부청사로, 상무관은 국회의사당으로, 뒤편 경찰국은 군ㆍ경 합동작전사령부로 쓰였으며 도지사 관사는 대통령관저로 사용되었다.
1951년 중공군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로 부산이 다시 임시수도가 된 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환도(8. 15)할 때까지 1차 임시수도 때와 같이 사용되었다.
1983년 7월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58년 3개월 동안 경상남도청으로 사용되던 이 건물은 경남도청 이전 이후 부산지방법원ㆍ부산지방검찰청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법조청사가 거제동으로 이전된 후인 2002년 동아대학교에 매각되었다.
본 건물은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서구식 르네상스 양식의 변형된 양식이다. 강한 정면성의 입면과 좌우 대칭의 평면이 특징이며, 입면 구성과 양측면의 마무리 구성이 비교적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초 준공 당시에는 일자형(一字形)으로 지어진 건물이 1960년대의 극심한 증ㆍ개축으로 인해 평면이 미음자형(ㅁ字形)과 날일자형(日字形)으로 변하였다.
200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변형된 부분을 철거하고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하고 있다.
옛 경상남도지사 관사였던 임시수도 대통령관저와 함께 우리고장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근대건축물로,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민족에 대한 수탈의 중심기구로써, 한국전쟁기에는 임시수도의 정부청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ㆍ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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