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동 (Ami-dong, 娥嵋洞)
아미동은 원래 아미골이었다.
아미동과 아미동의 뒷산인 아미산 모두 아미골에서 유래하였다. 아미산은 문헌에 기록이 없는 산으로 그 이름의 출처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출처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첫째, 움집의 옛말인 애막이 변하여 아미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둘째, 눈썹 모양[蛾眉]의 반월형의 토성이 이곳에 있어서 토성을 아미월이라고 부른데서 아미골의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개항 후 일본인의 부산거주가 늘어나면서 아미동 골짜기에는 일본인의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공동묘지 입구에는 화장장이 이전하여 아미동은 화장장고을로 이름나게 되었다. 해방 이후 귀환동포들이 부산항으로 물밀듯이 들어왔는데, 이들 중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아미동묘지터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전쟁 중 피란민들 또한 아미동 묘지터에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피란민들은 아미동에 거주하면서 부두나 자갈치시장에서 하루품팔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