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으로 구분된 하대(下臺) 위에 타원형의 연화대가 있고 연화대 위에 3.3m높이의 석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신에는 우리나라 지도모형의 자판을 그리고 자판위에는‘忠武公李舜臣永慕碑’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인 임진년(1592년) 9월 1일(음력)의 부산포 해전은 적선470여척 가운데 100여척을 쳐부수는 큰 전과였다. 이 전공을 기리기 위해 광복 후 1947년 일본식 동명과 거리명을 고칠 때 현재의 충무동과 충무로를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명명한 것을 계기로 당시 충무로에 있던 일본의 남항매축공덕비를 충무동 경로회 회원 52명이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자 비문의 글귀를 파내고 우리나라 지도형을 만들어 당시의 시장 배상갑의 글씨로「忠武公 李舜臣 永慕碑」9자를 써서 새겼다.
비를 세운 1957년 이후 해마다 음력 9월 7일에는 영모비 앞에서 경로회가 향사(享祀)를 지냈다.
1960년 충무동 교차로가 확장되면서 영모비는 원형 그대로 축대와 함께 남부민 3동에 있던 해양고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가 해양고등학교가 1992년 5월 사하구 감천동으로 이전하자 1992년 9월 서구의 대신공원 입구 안쪽으로 비대(碑臺)와 비신(碑身)이 옮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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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