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신동 2가 210의 자리에는 조그마한 동물원이 있었다. 그 동물원의 이웃이 되는 넓은 빈터는 주위 주민들이 많이 모여드는 놀이터였다. 그 놀이터에 1920년 6월 운동장을 개설하였다.
처음에는 ‘부산공설(公設)운동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종합 운동장이었다. 1928년 9월부터 전차가 대청동을 거쳐 오는 선과 남포동을 거쳐 오는 선이 부용동 앞을 지나 운동장 정문 앞까지 운행되면서 운동장 앞이 전차종점 (현재의 대신문화맨션 자리)이 되고는 교통이 편리해졌다.
운동장이 개설되고는 운동행사 뿐만 아니라 경축행사와 궐기대회 같은 것도 많이 열렸다. 일제 때인 1940년 11월 일제가 전력증강이란 이름아래 군사경기가 펼쳐졌는데, 그 때 동래중학(현 동래고등학교)과 부산2상(종전의 부산상고) 학생들이 민족의거인 ‘노다이(乃大)’사건을 이 공설운동장에서 일으켰다.
6. 25전쟁 때는 미군 수송부대가 주둔했었고, 1959년 7월 17일에는 국제신보사(현 국제신문)가 주최한 ‘시민위안의 밤’ 행사 도중 갑작스런 폭우로 장내에 모인 3만여 관중이 일시에 퇴장하는 과정에서 57명이 압사되고 1백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1963년 5월에는 육상경기장과 야구장에 스탠드시설이 설치되었고, 1971년 3월에는 구덕실내체육관이 건립되었다.
전국규모의 체육대회로 1973년 10월의 전국체전과 1975년 5월의 제4회 전국청소년체전이 열렸다.
‘구덕운동장’이라는 이름은 1982년 1월 사직운동장 개장 때이다.
1982년 6월에는 야구장에 조명시설을 하였고, 그 후 1987년 5월에는 제16회 전국소년체전이, 1988년 10월에는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의 축구경기가 이 곳에서 열렸다.
2002년 11월 1일에는 체육관, 헬스장, 에어로빅장, 조깅트랙 등을 갖춘 ‘부산국민 체육센터’가 개장되어 이제 구덕운동장은 종합체육요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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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