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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발자취
석성산성

석성산성 The Stone Mountain Fortress

‘동래부지’ 에서 석성산을 동래부의 남쪽 40里에 있고 옛날에는 봉수가 있었으나 현재는 구봉으로 옮겨져 있다고 했다.
그러니, 석성산이란 오늘날의 남부민동의 천마산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석성산이 천마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석성산 주위가 조선조 때 나라의 말을 기르는 목마장이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석성산이란 이름은 돌로 쌓은 성(城)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데, 이 석성산 정상에 오르면 남해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왜구의 침탈이 심했을 때 이 정상에 석성을 쌓았던 것으로 본다. ‘부산부사원고(釜山府史原稿)’에 의하면 ‘천마산성(天馬山城:石城山城)은 신라·고려시대에 이미 축성되었다고 하고, 정상에는 바다를 감시하여 적의 침입을 봉수로 전하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봉수대도 산성도 허물어져 자취를 잃었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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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지’ 에서 석성산을 동래부의 남쪽 40里에 있고 옛날에는 봉수가 있었으나 현재는 구봉으로 옮겨져 있다고 했다.
그러니, 석성산이란 오늘날의 남부민동의 천마산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석성산이 천마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석성산 주위가 조선조 때 나라의 말을 기르는 목마장이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석성산이란 이름은 돌로 쌓은 성(城)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데, 이 석성산 정상에 오르면 남해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왜구의 침탈이 심했을 때 이 정상에 석성을 쌓았던 것으로 본다. ‘부산부사원고(釜山府史原稿)’에 의하면 ‘천마산성(天馬山城:石城山城)은 신라·고려시대에 이미 축성되었다고 하고, 정상에는 바다를 감시하여 적의 침입을 봉수로 전하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봉수대도 산성도 허물어져 자취를 잃었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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