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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동(주민센터소개)
안녕하십니까?
부산 서구 아미동을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미동은 부산의 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원도심권의 변경지대이자 까치고개 주변으로 정감이 묻어나는 따스한 마을입니다.
국민의 최고애창곡인 故김정구 선생의 '눈물젖은 두만강'이 만들어진 곳으로, 프로복싱 15차 방어에 성공했던 장정구 선수의 고향이자, '안개'의 가수 정훈희씨가 자라난 곳이 바로 아미동입니다.
인정 많은 어르신들이 이웃과 함께 즐기며 장수하는 행복마을이며, 최근 행복주택 건립과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으로 젊은 층 유입이 기대되어 신구조화를 도모하는 발전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부산농악의 원류인 아미농악과,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은 비석문화마을 등 역사성을 지닌 관광자원이 풍부하며, 아미문화학습관 및 기찻집예술체험장 등 커뮤니티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문화체험이 가능한 아미동!
이 곳에서 여러분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아미동은 뜨거운 가슴으로 여러분을 맞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미 동 장
연혁
1957. 1 구제 실시로 서구 설치(아미동)
1966. 1 아미동에서 아미제1동, 아미제2동으로 나누어 짐
1998. 10 아미1,2동에서 아미동으로 통합
유래 및 특성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는 구릉성 산지인 아미산(162.4m)이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충무동, 서쪽은 사하구 감천동, 남쪽은 초장동, 북쪽은 부민동과 접해 있다. 아미동의 명칭은 움집을 말하는 '애막'이라는 옛말이 변하여 한자로 아미(峨嵋)가 되었다. 다른 유래로는 이곳에 반월형(半月形)의 토성(土城)이 있었는데, 이것을 아미월(峨嵋月)이라고 부른 데서 아미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다. 조선시대 말에는 동래군 사하면(沙下面) 부민리(富民里) 지역이었고, 1896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부민동 일부를 분할하여 곡정1·2정목이라고 하였으며, 1947년에 아미동1·2가로 바뀌었다. 1959년에 아미1·2동으로 개칭하고, 1998년에 행정동인 아미1·2동을 합쳐 아미동으로 하였다. 행정동인 아미동은 법정동인 아미동1·2가로 이루어져 있다. 공공기관으로는 아동보호종합센터, 아미파출소, 아미우체국, 부산대학교 병원 등이 소재한다.
아미동과 사하구 괴정동을 이어주는 천마산과 아미산 사이에 있는 고개를 까치고개라고 하는데, 1910년에 일제의 강점을 전후하여 지금의 천주교 아파트 부근에 화장장이 설치되면서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자주 열렸고, 그때마다 제물의 음식 찌꺼기가 까치먹이로 제공됨에 따라 까치가 많이 모여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 중턱에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공신 김근우(金根佑)의 묘소가 있다.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부산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공동묘지를 아미산으로 옮기고, 화장장도 1909년에 아미산으로 이전하였다. 화장장 일대의 마을을 화장골이라고 하였는데, 1957년에 화장장이 이전되고 개발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화장골의 모습이 사라졌다. 문화재로는 부산농악(부산무형문화재 6)이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아미농악이었다. 아미동의 총면적은 0.719㎢, 3,709세대,인구6,181명(2023.1.1기준)주민이 살고 있다
기본현황
면적 | 0.719㎢ | 세대수 | 3,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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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구 | 3,115 | 여자인구 | 3,066 |
공무원수 | 14 | 통반 | 21개통 95개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