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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신3동(주민센터소개)
안녕하십니까
먼저 우리 서대신3동 홈페이지를 찾아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서대신3동은 1947년 서대신동3가로 개칭되고 1970년 서대신3동과 4동으로 분동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서대신3동 직원은 주민과 한마음이 되어 화합하고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민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민의 불편을 먼저 찾아가서 해소하는 서대신3동 주민센터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혁
1947. 서대신동3가로 개칭
1951. 동제개편으로 서대신3동
1970년 7월 1일 서대신3동을 서대신3동과 4동으로 분동
서대신3동 : 서대신3가 162번지 ∼ 700번지
서대신4동 : 서대신3가 1번지 ∼ 161번지
2000년 10월 : 서대신3동 주민자치센터 개소
유래 및 특성
지명 유례
서대신동(西大新洞)의 옛 지명은「닥밭골(楮田)」또는 「고분도리」이다. 딱박골 또는 딱밭골 등은 닥밭골을 말하며 닥나무가 많이 나는 골이라는 뜻이다. 또 전하는 바로는 보수천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고도 한다. 고분도리란 마을 이름은「고불」·「드르」에서 온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고블」은 고리짝을 말하며,「드르」는 들을 말하므로 「고블드르」는 고리짝을 만드는 들이 된다. 닥나무와 버드나무 그리고 고리짝 들판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이 일대에 부곡(部曲)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대신동이란 마을 이름이 처음 생긴 것은 1914년으로 추정되며, 보수천의 호안공사 이후 일본인이 대거 밀려와서 생긴 새로운 시가지를 한새벌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한새벌의「한」은 큰길을 한길이라 하듯이 큰대(大) 또는 태(太), 새는 새로운 이라는 뜻의 신(新), 벌은 넓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동(洞)이므로, 대신동은 한새벌의 한자식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대신동은 일본인 주거지가 되기 이전까지는 부민포에 속하기도 하고, 대치리의 일부에 속하기도 하던 곳이 대신리라는 새로운 지명을 얻게 되었다. 서대신동은 1926년 서대신정과 동대신정으로 구분되었고, 광복이후 1947년 7월 일제식 명칭만 바꾸어 서대신동 1,2,3가로 부르게 되었다가, 1959년 동명개정 때 서대신1,2,3동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1970년 서대신3동을 3,4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닥발골마을, 고분도리마을, 꽃마을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지역특성
고·저지대간 생활격차가 심한 전통적 주거지역
고지대 : 불량주택 밀집, 주거환경개선지구 선정
저지대 : 안정적 주택지역, 간선도로변
교육, 종교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일부도로변 상권 형성
채소재배 농가산재(영농회 구성) : 고지대 24여세대
기본현황
면적 | 1.4㎢ | 세대수 | 3,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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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구 | 3,349 | 여자인구 | 3,992 |
공무원수 | 10 | 통반 | 9통51반 |